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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천만의 일몰
석가모니 초보

돌풍이 몰랐던 불교문화 12

by 돌풍56 2012. 2. 26.

 

          

 

 

돌풍이 몰랐던 불교문화 12

 

불교의 상징물

 

1. 법 륜

 
부처님의 교법으로 일체 중생의 번뇌를 씻는 것을 법의 수레바퀴로 표현했다. 초기 불교의 교단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분류하는 교상판석에 많이 붙여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주창자로는 축도생.길장.진체.현장등이 있다. 축도생은 부처님의 일대교설을 선정법륜.방편법륜.진실법륜.무여법륜의 4법륜으로 분류하였고 길장은 근본법륜.지말법륜.섭말귀본법륜의 3법륜으로 진제는 전법륜.조법륜.지법륜의 3법륜으로 현장은 사제법륜.무상법륜.요의법륜의 셋으로 분류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와같은 법륜설을 널리 채택한 고승은 신라 원효스님이다. 원효는 그의 저서인 <열반종요> <법화경종요> 등에서 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길장의 3종 법륜에 대하여 원효는 근본법륜이란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여 화엄회상에서 보살들을 위하여 일인일과의 법문을 말한 것이고, 지말법륜은 복이 엷고 조기가 둔한 무리들이 그 깊은 일인일과의 법문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일승을 삼승으로 나누어 설한 것이라 했다.

섭말귀본법륜은 부처님이 40년동안 삼승의 법문을 설하여 그들의 근기를 향상시킨 뒤에 다시 삼승을 일승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설한 <법화경>등의 가르침이라 했다.

또 진제의 3법륜에 대해서는 유상법륜.무상법륜.무상무상법륜으로 바꾸어서 해설하였다. 유상법륜은 오직 성문승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사제를 근본으로하여 법륜을 즐기는 교법이며 <아함경>이 이에 해당한다. 무상법륜은 보살승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법의 공성을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굴리는 교법이며 <반야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무상무상법륜은 삼승을 모두 지향하는 이를 위한 것으로서 법공과 무자성을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즐기되 위가 없고 더 받아들일 것이 없기 때문에 이와같은 이름을 붙였으며 <해심밀경>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2. 연 꽃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부처님은 설법을 하실 때에도 연꽃의 비유를 많이 들었다. 또한 선가에서 '염화시중'의 미소요, 이심전심의 묘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날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지 않고 곁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였는데 제자중에 가섭존자가 홀로 미소를 지었다고한다. 이것은 마음으로 속속들이 전하는 도리로서 선종에서는 세곳에서 마음을 전한 이치라하여 중히 여기고 있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적인 꽃이 된 것은 다음 몇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처렴상정이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살지 않는다.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불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둘째, 화과동시이기 때문이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을 '연밥'이라 하는데, 즉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인 것이다. 이 꽃과 열매의 관계를 인(因)과 과(果)의 관계라 할 수 있으며 인과의 도리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셋째, 연꽃의 봉오리는 마치 우리 불교신도가 합장하고 서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경건히 서 있는 불자의 모습은 마치 한 송이 연꽃이 막 피어오르는 것과 흡사한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이유에서 연꽃은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연꽃(蓮華)은 연화(蓮花)라고도 하는데 소택(沼澤, 늪지대)에 생(生)하는 숙근초본식물(宿根草本植物)이다. 꽃의 색향(色香)이 사랑스럽고 또 진흙 가운데 나서 청정(淸淨)한 꽃을 피우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고래(古來)로 진중(珍重)한 보배로 여기고, 불교(佛敎)에서도 높여서, 불타(Buddha)나 보살의 좌(坐)를 흔히 연꽃의 받침으로 한다. 연꽃은 뿌리는 진흙 속에 뻗고 잎은 수면에 떠 매끄럽게 뻗어난 줄기 끝에 꽃이 피는데 해가 뜨면서 서서히 피어나서 해가 지면서 서서히 오므리는 청황적백(靑黃赤白)의 우아한 꽃이다. 연꽃은 진흙 수렁에서 자라면서도 물들지 않고 더럽혀 지지 않는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지니고 있다.

연꽃은 꽃망울의 맺힘과 동시에 蓮實(연씨)도 함께 맺혀 나오고 꽃이 핌과 동시에 연씨도 함께 실과(實果)로 성장되어 나오다 꽃이 완전히 滿開(만개)했을 때 연씨도 완전히 익어 간다(인과동시,因果同時). 또한 연꽃은 처음 꽃잎이 피어나면서는 그 속의 열매를 보호하고, 꽃잎이 떨어지면서 열매를 내 보이며, 꽃잎이 떨어지면 드디어 잘 익은 열매만 남게 된다.

이것은 연꽃의 속성으로 부처님의 一代時敎(일대시교)를 비유한 것으로 처음에는 방편(方便)의 가르침으로 시작해서 차츰차츰 제자들의 수준을 끌어올려 드디어는 방편은 떨어지고 진실한 모습, 즉 실상만이 남아 천지 우주 이대로 극락이요 불국토임을 연꽃으로 비유한 것이다. 연꽃의 색깔은 여러 가지로 피어 청련, 황련, 백련등으로 희유한 꽃이요, 아름다운 꽃이다. 연꽃은 물 속에서 피는 꽃도 있고, 혹은 수면에 떠서 피는 꽃도 있고, 물밖에 높이 솟아 있는 꽃도 있다. <부처님의 隨機說法(수기설법) 中에서> 불교 경전에는 연꽃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오고 특히 최고 경전이라고 불려지는 묘법연화경(묘법연화경), 華嚴經(화엄경)등 에서도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하여 가르침을 폈다. 蓮華心(연화심)이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을 自性淸淨心(자성청정심)이라 하여 근본 마음은 물들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므로 우리의 마음을 연꽃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蓮華座(연화좌)란 불보살이 앉으시는 자리를 말하는데 이는 사바세계의 塵土(진토)와 같은 곳에 중생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蓮華衣(연화의)란 스님들의 법복인 가사를 뜻하는 것으로 가사의 청정함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蓮華藏世界(연화장세계)란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서 연꽃에서 出生한 세계, 또는 연꽃 중에 含藏(함장)된 세계란 뜻이다. 연화장 세계는 향수로 된 바다 가운데 커다란 연못이 피어 있듯 본래 法身佛(법신불)이 천잎의 연화대에 앉았는데 천 잎이 각각 한 세계가 되고 그곳에 화현한 일천 석가모니불이 계시며 다시 백억 나라에 모두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 한다.

蓮華台(연화대) 蓮華心(연화심) : 自性淸淨心(자성청정심) 蓮華座(연화좌) 拈華微笑(염화미소)




3. 금강저

밀교의식에 쓰이는 작법용 불구로 번뇌를 없애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제존존상이 가진 법구 또는 스님들의 수행도구로 사용된다. 원래는 고대 인도의 무기였다. 밀교에서 불구로 채용한 것은 제석천이 금강저를 무기로 삼아 아수라를 쳐부순다는 신화에서 비롯됐다.우리나라의 밀교계 종파에서는 진언을 외우며 수행할때 항상 금강저를 휴대하게 되어 있다.

근본 뜻은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능히 마음속에 깃든 어리석은 망상의 악마를 파멸시킨다는 것이다. 밀교의 만다라에는 금강부의 여러 존상들이 모두 금강저를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열반경>에는 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금강저로 모든 악마를 티끌같이 쳐부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신중탱화에서는 동진보살이 반드시 금강저를 들고 있다.

금강저는 금.은.동.철 등으로 만들어지며 불교의 금속공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형태는 손잡이 양쪽이 뾰족한 끝을 가졌다. 모양에 따라 뾰족한 끝이 하나인 것은 독고, 2.3.4.5.9 갈래로 갈라진 것은 2고저. 3고저. 4고저. 5고저. 9고저라 한다. 최초에는 그 형태가 무기형으로 뾰족하고 예리했으나 불구로 사용되면서 끝의 가락이 모아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들중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손잡이 좌우에 불꽃 모양을 조각한 것은 보저라 하고, 탑을 조각한 것은 탑저라고 한다. 이들은 밀교의 단에 봉안되는데 탑저는 중앙에 나머지는 사방에 배치한다.현존하는 금강저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길이 22cm의 고려시대 청동5고 금강저가 소장돼 있으며 일반사찰에서는 조선시대의 금강저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경.변상도에는 가장자리를 금강저문으로 장엄한 예가 자주 나타나며, 현존 신중탱화에서는 대부분 금강저를 볼 수 있다.



4. 일원상(一圓相)

둥근 원을 불교에서는 일원상이라고 하는데, 우주만유의 본원 또는 원융무애한 법을 상징한 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일원상을 1천7백 공안(화두)의 하나로 삼고 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일원의 근본을 추구하는 것이 ○자 화두다. 예로부터 선방에서는 일원상을 벽에 그려 놓고 참선정진해 오고 있다. 이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장처인 일원의 진경에 들어가기 위한 수행방법이다.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보면 중국의 육조 혜능대사가 이르기를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했다. 서산대사는 주해(註解)에서 한 물건을 일원상으로 표시했다. 또 삼조 승찬대사는 일원상을 <신심명(信心銘)>에서 '허공같이 뚜렷하여 모자랄 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다.' 라고 말했다. 법정은 <선가귀감> 역주에서 일원상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마음.성품.진리.도라 하여 억지로 이름을 붙였으나 어떤 이름으로도 맞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도 그 참모양을 바로 그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한한 공간에 가득 차서 안과 밖이 없으며 무궁한 시간에 사뭇 뻗쳐 고금(古今)과 시종(始終)도 없다. 또한 크다, 작다, 많다, 적다, 높다, 낮다 시비할 수 없으며, 거짓.참 등 온갖 차별을 붙일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동그라미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당나라 혜충국사(慧忠國師, ?-775)는 97가지 그림으로 가르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도저히 그 전체를 바로 가르칠 수 없어 이것을 가르친다면 입을 열기 전에 벌써 가르친다며 '알거나 알지 못한 데에 있지 않다.' 고 했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고 법정스님은 설명을 덧붙였다. 불문에 들어와 이러한 공안을 참구한 뒤 원불교를 개교한 소태산은 일원상을 원불교의 상징 즉 종지(宗旨)로 삼았다. 따라서 원불교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5. 만자(卍字)

범어 Srivatsalksana(수리밧살크사나), 万字, 萬字, 卍字 라고도 한다. 길상해운(吉祥海雲), 길상희선(吉祥喜旋)이라고도 쓴다. 吉祥(길상)과 행운의 표시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의 하나로 불타의 가르침에 덕상(德相)이 있고 또 불타의 수족(手足), 두발(頭髮)과 허리에도 있다고 한다. 이에 상당한 범어는 네 가지가 있지만 Srivatsa(슈리밧사)란 말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 말은 모발이 말리어 겹치고 합해져 해운(海雲)같은 모양이란 뜻이다. 따라서 만자(卍字)란 길상만덕(吉祥萬德)이 모이는 곳을 뜻한다. 또한 만자(卍字)는 십자와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었는데, 그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불교나 절을 나타내는 기호나 표시로 쓰이고 있다. 모양은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우만자(右卍字)와 왼쪽으로 도는 좌만자(左卍字)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런데 이 卍자를 입체적으로 형상화시켜서 세워 놓고 볼 때 앞에서 보면 卍 모양이 되지만 뒤쪽에서 보면 우만(右卍)자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옛 조각에는 右卍(우만)자가 많으나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굳이 구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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