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3대 신앙 (2)
(2) 약사신앙
지난호에 살펴본 관음신앙에 이어 약사신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의 갖추어진 명호는 약사유리광여래이십니다. 『약사경』을 보면 약사여래부처님은 본래 열두 가지 큰 원을 세우고 성취해서 동방만월세계를 이루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의 열두 가지 원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내가 성불할 때 나와 모든 중생이 몸의 광채가 찬란해서 온갖 세계를 비추며 서른두 가지 대장부상 갖추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성불할 때에 몸이 유리와 같이 안과 밖이 청정하여 아무 더러움이 없고 중생들이 어두운 곳에 있으면 내가 그들을 비추어 아무 불편이 없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성불할 때에 무량한 지혜 방편을 갖추어 중생들이 흡족히 수용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을 세우셨고, 또 내가 성불할 때에 다른 중생들이 다른 외도(外道)의 길을 걸으면 다 보리도에 돌아와 편안히 앉아서 모든 대승법을 실천하여 거기에 들어가기를 원하며, 내가 성불할 때에 나의 교법 중에 수도하는 중생이 다 청정하고 근엄한 계율을 지키게 되기를 원하며, 더 나아가서는 내가 성불할 때에 중생이 혹 불구이거나 눈과 귀가 어둡거나, 등이 굽든지, 피부색이 이상하거나, 정신에 광기가 있을 때 내 이름 즉 ‘약사유리광여래’라고 하는 이름을 들으면 다 회복되어 신체가 구족하고 신색이 원만하기를 원하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사여래로서 중생의 병고를 보살피는 본원입니다.
더 나아가서 약사여래부처님은 내가 성불할 때 고통에 시달리거나 의지할 곳 없고 가난하여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중생이 내 이름을 한 번 들으면 모든 환난을 다 여의고 마침내 성불하기를 원하고, 내가 성불할 때 여인들이 여성의 몸을 바꾸고자 하면 내 이름을 한 번 들으면 곧 대장부의 몸으로 태어나기를 원하며, 내가 성불할 때 사견이 많은 중생은 다 정견에 앉아 있기를 원하며, 내가 성불할 때 감옥에 구속된 중생은 모두 나의 복력(福力)으로 빠짐없이 석방되기를 원하며, 내가 성불할 때 중생이 배고픔에 허덕이면 내가 그들에게 먼저 좋은 음식으로 채워 주고 나중에는 무상진리를 깨닫게 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또 내가 성불할 때 중생이 의복이 없어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해충들에게 고통을 당한다면 내가 저들에게 충분한 의복을 주어 풍족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한다는 서원을 세우셨고 그 원이 성취되도록 팔만사천 보살행을 닦았기 때문에 마침내 약사여래부처님이 되셨고 만월세계가 성취된 것입니다.
이상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보살도를 닦을 때 세운 본원입니다. 이처럼 약사여래부처님은 계속해서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의 병고를 치료하고 계시는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약사여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절에 가 보면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藥師殿)이 보통 극락전(極樂殿)과 마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약사신앙을 통해서 정신적 혹은 육체적 병고를 물리치고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극락세계에 가서 복락(福樂)을 구족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생전 신앙과 사후 신앙이 상당히 잘 조화를 이룬 신앙체계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월보전(滿月寶殿)과 유리광전(琉璃光殿)이라고 하는 법당은 모두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이와 같이 약사여래부처님은 중생의 모든 병고를 잘 치료해 주고 잘 보살펴 주는 부처님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약사여래불에 대한 신앙은 일찍이 신라시대 때부터 많이 성행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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