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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매산 철쭉
발길 가는대로

지리산을 품은 산청여행

by 돌풍56 2017. 6. 21.

2017년 6월17일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제 지리산 대원사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원사 계곡은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면서도 여름에 물놀이 하기 좋은 소가 많아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6월16일 켐핑코스

    지리산 내원자동차야영장(1박)---내원사--대원사계곡---산천재---남사예담촌 

 


대원사계곡을 향하여 ~~~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를 지나 맑고 멋진 청정 계곡을 찾아 잠시 후식을 취하고 다시 대원사로 내려왔다 


대원사는 도로에서 바로 대웅전의 부쳐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찰인것 같다

그런데 먼저 올라간 친구가 팔을 벌려 막고 서 있다 ㅋㅋㅋ



대원사를 지키는 수호신인 사자상


뜰에있는 약수터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대웅전에 들러서 부처님을 참배했다


분홍장미가 아직 예쁜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주문 앞 계곡에서 휴식중


맑은 물과 푸름숲의 시원스런 자연에 흠뻑 취해본다



산천재에서



지리산 천왕봉 아래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의 뜰에는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년(1561)에 손수 심은 매화나무가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BR><BR>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룰 만큼 호남 학파의 수장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사간원(司諫院)과 대사간(大司諫)에 이어 영의정에 추서된 위인이다. 선생은 1501년(연산7년)에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나아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하였다가 그 후 의령, 김해, 삼가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선생은 61세가 되던 해에 산청의 덕산으로 이주해 그곳에 서실을 짓고 산천재라 이름하였다[Daum백과에서 인용] 



산천재 현판


산천재를 지나 남사예담촌에 들렀다


남사예담촌 안내도


난사예담촌의 명물인 회화나무


고가의 대문



푹푹찌는 무더위에 밀짚모자를 쓰고 ㅎㅎㅎ







사효재와 향나무 (수령: 520년)국립산림과학원 측정

1706년(숙종32년)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효자비를 내렸으며 후손들이 사효재를 

지었다고 한다. 성주이씨 집안과 마을에서 제례를 올릴때 향을 사용하였으며 그 효심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이 향나무를 심었다고 함


수령 527년을 자랑하는 향나무를 돌풍이 안아보니 ㅋㅋㅋ



예담길 안내도


이사재 전경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위치한 이사재는 판서 송월당(松月堂) 박호원(朴好元)의 재실이다. 2003년 4월 17일에 경남문화재자료328호로 지정되었으며 1,226.9m의 규모다. 입암(立庵) 박헌수(朴憲修)의 기문과 송주(松州) 하도(河圖)의 현액이 있다. 




2014년 명품한옥으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의 최씨고가


명품고택인 최씨고가


1박2일동안 지리산켐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 산청군 덕산의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짬뽕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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