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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매산의 억새
발길 가는대로

돌풍 ! 도동서원에서 공부하다 (하편)

by 돌풍56 2011. 4. 28.

 

중정당을 돌아 뒷편의 제향 영역인 사당 앞으로 조성된 후원으로 발을 옮기면 돌계단과 마주친다

 

사당앞 내삼문 아래 자라머리 모양의 석물이 있는데 이것은 풍수상 서원 주변지세가 자라 형상이기에 자라의 몸중에서 기가 제일 좋은 자라 목 위에

서원을 앉혔음을 의미한다.

 

제향 영역의 입구인 내삼문

평소에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오늘은 문화재청에서 적외선 촬영을 하고 있어 덕분에 내부를 구경하는 행운을 얻었다

아마 이것또한 돌풍의 타고난 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ㅎㅎㅎㅎㅎㅎ 

 

제사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김굉필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지붕과 공포를 쌓은 양식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맞배지붕이다.

앞면 3칸에는 각각 2짝씩 널문을 달았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해 쌓은 맞담으로 구성하여 매우 아름답다.

답사 당일날 우축에 적외선 촬영중인 문화재청의 카메라가 보인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중정과 8월 중정에 지내고 있으며, 긴 돌기둥 위에 역시 사각향 상석을 얹은 정료대(庭燎臺: 연료를 올려 놓고 불을 밝히는 곳)라고 한다 

 

 중정당 주변의 아름마운 담장 

 

한옥과 전통의 미가 물씬 풍기는 서원의 담장

 

현판과 기둥에 붙인 흰 띠..
서원 중에 으뜸이란 표시로 흰 띠를 두르게 했다 한다.

 

 

 

입구인 수월루와 환주문,그리고 중정당과 사당이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다

 

강당·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강당 사당 부 장원)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88호)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

 

환주문과 동재 전경

 

[전사청(典祠廳)입구]
지금 관리소로 쓰이는 전사청(典祀廳)에는 유생 식당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수령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일명 김굉필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도동서원이 사액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강 정구 선생이 심은것으로 전해온다.
정구 선생(1543년-1620년)은 청주 정문(鄭門)으로, 호(號)를 한강(寒岡)으로 스스로 지어 불렀다.
선생은 중종대왕 때 성주(星州)에서 태어나서 성주에서 사셨으며,광해군 때 사헌부 대사헌을 지내셨다.
가지가 뻗다가 땅에 닿자 다시 하늘향해 치솟아오른...은행나무는...
수령이 너무 오래되어 보호지팡이(세멘트기둥)를 하고 있었다

 

고중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 남은 전국 주요 47개서원중의 하나로 역사적인 의의가 매우 큰 서원이다.

 

느티골과 정수골을 사이한 산등성이가 마치 다람쥐를 닮아 옛부터 '다람재'라 불러 왔다고 한다

 

[寒暄堂 金宏弼 先生 詩碑]
<路 傍 松>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길 가에 서 있어
괴로이도 오가는 길 손 맞고 보내네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느냐

 [다람재 돌비석에서...] 

 

다람재의 정자에 오르면 발 아래 도동서원을 비롯해 낙동강, 고령 개진면 일대 평야까지 펼쳐진다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전경 

현풍에서 도동리로 넘어가는 고개 다람재에서는 도동서원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오른편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솔숲이 다북한 대니산 산자락 밑에 도동서원건물이 있다.
서원 중에서 제일 알아주는 서원. 우리 나라 5대 서원 중에 으뜸이 되는 서원이라 전해온다

 

그냥 지나칠뻔했던 도동서원

노학형님으로 부터 듣고 배운 역사기행이 학창시절의 수학여행과는 비교가 되지않을 소중하고 귀한

선조들의 지혜와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에서 정말 보람있는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형님 !

정말 고맙고 가슴깊이 새길 우리의 문화유산에 눈뜨게 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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