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3일
노학형님의 안내로 찾아간 달성군에 위치한 도동서원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지고, 바로 눈앞에 우뚝선 은행나무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비슬산 산행만 생각하고 왔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서 형님의 설명만으로도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은
그져 먹고 놀고 좋은것만 찾아다녔다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도동서원 !
과연 이 도동서원에는 어떤 선조들의 얼이 숨어 있는지를 알고나면 절로 감탄을 하고말 것이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 (8,891㎡)에 위치한 도동서원 안내
우리나라 5대 서원, 도동서원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위치한 도동서원은 병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5대 서원 중 하나이다. 조선 초기의 명유(名儒)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배향하였다. 1568년 지방유림에서 비슬산 동쪽 기슭에 세워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고 하였고, 1573년에 같은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에 사림들이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중건하여 보로동서원(甫勞洞書院)이라고 하였다. 1607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었다.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道東書院講堂祠堂附墻垣:보물 350)이 있다. 2007년 10월 10일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김굉필나무라고 불리우는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나무를 보호하기위해 곳곳에 기둥을 세워 넘어짐을 방지하고 있다
서원 입구의 건물 이름이 낙동강 위에 뜬 달이라는 ' 수월루'라는 걸 알면 풍류가 더해진다.
수월루에 올라 바라보는 낙동강은 담담히 "좋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수월루를 지나 '내 마음의 주인을 부른다'는 뜻의 환주문은 의도적으로 작게 설계됐다
서원의 담장은 특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토담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이용해 만든 축조기법이나 수막새의 장식무늬등은 빼어나다
낮게 만들어져 모두 머리를 숙여 들어가도록 했다.
누구나 공부하는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겸손한 마음을 느끼도록 환주문의 중간에 연꽃문양의 돌을 설치했다
개가 설
중정당 기단에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4개의 용머리를 조각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사물잠이라 하며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고 한다
도동서원 강당을 유지하고 있는 기단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같은 모양의 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양의 돌로 맞춰 두었고 시시각각 색이 오묘하게 변한다.
4각부터 12각돌까지 튀어나온 모서리들을 맞춘 솜씨를 보고 있자니 조화로 움이 이런 건가 싶다(노학형님의 설명으로는 잉카제국의 막추픽츄의 돌담도 8각이라는데
도동서원의 돌은 12각형으로 세계최고라고 한다)
강학영역인 중정당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며 우측은 올라가는 계단이며, 좌측은 내려오는 계단입니다
중정당을 오르는 좌우계단의 다람쥐모양의 동물상이 조각되어있는데 이것의 용도는 다람쥐 머리가 위로 꼬리가 아래로 되어있는 것은 이쪽으로 올라가라는 뜻(우측사진)
다람쥐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왼쪽이며 이쪽 계단으로 내라가라는 뜻이라네요
환주문을 통과하면 앞쪽에 강당인 중정당입니다.
강학 공간으로 사용되어졌고, 좌우 앞퇴가 있는 한칸씩은 온돌방이고,,가운데 3칸은 앞면을 개방한 대청입니다
환주믄을 통하여 중정당으로 들어서면 이 거북머리와 마주치게되는데 이 돌거북의 의미는 강학 공간인 중정당 마당에서는 뛰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묵언의
가르침을 주는 상징이며 중앙 길은 스승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니 함부로 침범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무엇 하나 말로 하지 않고 상징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의 속뜻을 새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정당 한가운데 있는 이 도동서원 현판이 바로 선조가 내린 사액현판입니다. 물론 글씨는 선조가 쓴건 아니구요. 모정 배대유라는 분이 썼다고합니다
앞쪽 처마 밑 현판 글씨는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해 만든 것입니다,
이 서원의 담장은 특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토담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이용해 만든 축조기법이나 수막새의 장식무늬등은 빼어납니다
환주문의 지붕에는 과대하게 큰 사모형태의 절병통이 얹혀있다. 문을 만들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빗물이 지붕으로 스미는 것을 막는 용도라고 한다
환주문이 많이 열리지않게 중앙에 연꽃문양의 돌을세워 문지방역활을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서재는 일반 서민들의 자재들이 쓰던 방이었으며 창문이 없고 아궁이가 앞쪽에 있습니다
동재는 양반들의 자재들이 쓰던 방이며, 마루가 있고 창도 있으며, 아궁이는 뒤쪽에 있습니다
이렇게 노학형님으로부터 공부도 하고 기념으로 형님과 함께 방명록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돌의 용도는 김굉필 선생의 제사를 지낼 때 동물을 제사상에 올리는데 그때 그 동물이 제사상에 올려도 괜찮은지 다섯사람이 주위에 서서 평가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제사를 지낼때는 익힌 음식이 없으며 동물도 생으로 나물도 생으로 익힌 음식이라고는 오직 밥 밖에 없다네요.
중정당의 뒷편
중정당 뒤편의 계단을 오르면 제향 영역으로 김굉필의 위폐가 모셔져 있는 한휜당이다
다음 도동서원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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