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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 황매산에서
산길 따라서

돌풍의 남한산성 종주 (상편)

by 돌풍56 2011. 8. 11.

2011년 8월 4일 목요일

어제 수락산과 불암산 종주를 마치고 오늘은 강남의 성남시에 있는 천연요새 남한산성을 찾아 간다

비는 오락가락하지만 역사책에 나오는 남한산성을 간다는 것이 나를 들뜨게 만든다

강남에서 8호선을 타고 도착한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려 다시 9번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내린 산성입구

그런데 내가 너무 방심을 한게 이런 어마어마한 고생을 하게 될 줄이야 ㅋㅋㅋㅋㅋ

머리가 나쁘면 발이 고생한다는게 이런것이겠죠 ㅎㅎㅎ

 

 

남한산성의 안내도 입니다

입구인 남문에 도착하여 좌측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돌풍은 여느 공원이나 유원지처럼 시내버스가 남한산성입구만을 지나가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은 산성안에 있으며 산성을 관통한다는 것을 몰랐던거죠 (이런 멍청이 지도를 보고도 몰랐다니 ㅋㅋㅋ)

버스에서 내려 안내도 처럼 좌측으로 가는코스가 돌풍이 계획한 코스인데 산성안에서 하차하여 바라본 좌측길은 반대방향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걸어갔던 길이 초록색 길인 검단산 방향이었습니다 (2시간을 날려버렸다 아이구 미치겠네 ~~~~)   

 

전철 8호선을 타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려 1번출구로 나와 조금만 올라오면 상원초등하교 정류장에서 9번시내버스를 탑니다 (버스비 1000원)

 

꼬부랑길을 돌아 산성터널을 지나 바로 내리는 임시정류장입니다 (여기가 산성안쪽입니다 ㅎㅎㅎ)

 

남한산성은 온조 14년 BC 5에 하남 위례성에서 천도해온 이후 신라 문무왕 12년(AD 672) 토성(주장성, 일장성라 칭함)으로 축성하였고, 조선 광해군 13년(1621년)에

후금의 침임을 막고자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 하였으나 준공치 못하고 이괄의 난을 격고난 후 인조 2년(1624)에 재 시작하여 인조 4년(1626)에 준공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남한산성 성벽을 국가사적 제 57호로 지정하였고 1971년 3월 17일 남한산성 도립공원으로 지정(제 158호) 하였으며 1976년 7월 1일 관리사무소가 개소되었다..

입구로 올라가면 바로 남한산성의 남문입니다  

 

자화문(남문)방향으로 들어가는데 비가 오네요

 

남문 전경 

 

남문 안내도

 

철판으로 만들어진 남문의 모습입니다

 

                                         남문앞에 있는 보호수인 느티나무는 수령이 350년이라고 한다

 

이정표에 검단산이라고 나오기에 이 방향으로 가면 서문--북문이 나오는줄 알았는데 ~~~~~~

 

높은 성벽을 지나고

 

비는 오늘도 하염없이 내립니다

 

남한산성의 등산안내도는 돌풍이 계획한 산성종주코스도 아닌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사진만 찍고 지나갑니다 

 

녹음이 짙은 수풀을 지나

 

한 모금 약수로 목을 축일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무려 1시간이나 가다보니 바라는 서문은 보이지도 않고 더 이상 이정표도 없습니다

 

몇번이나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제법 큰 약수터가 나옵니다 

 

검단산 약수터입니다

저기 운동을 하시는 분에게 검단산 정상이 어느쪽이냐고 여쭈어보니 바로 위라고 하기에 그럼 서문은 하니 의아해합니다

그제서야 비가 오지만 지도를 꺼내어 보여주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정반대로 오셨네요. 그리고 여기는 남한산성 외곽방향이며 다시 왔던 남문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합니다 (아이구 이거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ㅋㅋㅋ)  

 

그렇게 정상의 능선에서 군부대길로 총알처럼 남문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무려 2시간이나 낭비를 했네요 (이런 멍청이 ㅋㅋㅋ)

 

남문에서 다시 이정표를 확실히 보고 수어장대방향으로 오릅니다

도무지 방향감각을 모르겠어요

 

성곽길을 올라가니 되돌아온 허탈감으로 피로가 겹칩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성곽길이 북한산성보다는 웅장해 보이네요

 

잠시 언덕위 팔각정에서 땀을 말리고 ~~~~~

 

계속 성곽길을 따라가기로 하고 서문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갈수록 성곽이 멋을 더하네요

 

사기충천기가 성곽에 펄럭이고

 

뻘뻘흘린 땀을 씻으라고 길목에 아이스케끼와 얼음물을 팔고있는 분에게 물도 싸고 사진도 한장 부탁을 하고 ㅎㅎㅎㅎㅎ 

 

안개에 묻힌 성곽과 깃발이 조화를 이룹니다

 

성곽은 기본적으로 원성과 외성으로 구분된다.
원성은 인조 2년(1624)에 수축한 남한산성의 영역으로서 하나의 폐곡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본성을 의미한다. 이외에 외성으로는 동쪽에 봉암성과 한봉성이 있고, 남쪽에 신남성이 있는데 이곳에는 동·서 두 개의 돈대가 구축되어 있다. 지금까지 남한산성의 규모와 면적에는 많은 이론이 있었다. 『광주군지』에는 8km 정도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1 : 5,000 지형도를 기본으로 한 GIS측정 결과 산성의 둘레는 옹성을 포함하여 10,841.5m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남한산성에 대한 정확한 측량이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한지』에서는 성벽 안 둘레는 6,290보로 17리반이고, 바깥 둘레는 7,295보로

20리 95보이며, 성가퀴는 1,940타이고, 5옹성과, 16개의 암문, 125개소의 군포, 4개소의 장대가 있다고 하였다.

서문에 도착을 하니 숲속에서는 산객들의 휴식이 펼쳐지고 있고

 

성곽에서 본 서문의 전경

 

서문 (우익문) 안내도  

 

성곽아래에서 본 서문입구에는 선조들의 피땀어린 그날들이 떠오르는듯 하네요

 

성밖에서본 서문

 

북문

 

북문 안내도

 

북문을 배경으로 한 컷 부탁을 하고

 

성벽따라 오다 갈림길에서 음식점을 발견하고 점심을 먹으러 내려갑니다

 

아담하게 차려진 음식점에 들러 시원하게 국수가 먹고 싶어 잔치국수를  한그릇 주문하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잠시후 주인장이 들고나온 것은 펄펄 끓고있는 국수가 나왔습니다

이게 잔치국수라고 하는데 .......................

안그래도 더워서 폴짝뛰겠는데 국물에는 땡초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매워 죽겠고 . 결국은 국수만 건져먹고 나왔습니다

 

주변의 돌을 모아 만든 돌탑도 있고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의 일종이다. 
암문은 이름 그대로 비밀스러운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성문보다 작게 하고, 문루나 육축 등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다.
암문의 기능은 성내에 필요한 병기, 식량 등 항쟁물자를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적의 눈에 띄지 않게 구원요청은 물론 원병을 받고 역습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암문은 평지성 보다는 산성에 축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형적으로 설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암문 모습

 

다시 쉬임없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힘들어 죽을뻔 했다

 

암문

 

곳곳에 허물어진 성벽을 보수하기 위해 간판을 메달아 놓고 조사중이다

 

동장대터 안내

 

동장대누각은 흔적도 없고 빈터만 남아있다

 

남한산성의 여장

성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을 말한다. 이 여장은 다른 용어로 여담, 여첩, 치첩, 타, 여원 이라고도 하고

고어로는 성각휘, 성가퀴, 살받이터 등으로 불려졌다. 또한 설치하는 목적에 따라 치폐, 첩담, 비예, 희장 이라고도 하였다.
여장의 종류에는 평여장과, 凸형여장, 반원형여장 등으로 구분된다.평여장은 타와 타 사이에 타구를 설치하고 크기가 일정한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남한산성의

여장은 1940타 이며 모두 평여장이다

 

옛 군영의 초소라 하며 모두 125개의 군포가 있었으나 지금은 땅속으로 묻혔거나, 돌무더기로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사진은 발굴하여 복원한 터의 모습중 한 곳으로 동장대지의 동쪽아래 군포지 입니다.

 

성의 높낮이에 따라 성곽이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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