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의 남한산성 종주 하편입니다
장경사 신지옹성은 둘레가 159m이며 여장이 40개였다. 옹성 끝에는 2개소의 포루가 구축되었다. 포루의 좌측 벽에는 이방 이라 불리는 무기나 화약을 저장하는
시설이 있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또 한겹의 성벽을 둘러 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성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옹성을 먼저 통과해야만 하고,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소나무와 성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킵니다
장경사는 성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중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한는 유일한 사찰이며, 남한산성 동문 안에서 동북쪽으로 약 350m거리의 해발 36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망월봉의 남사면 중턱 곡저부이 완경사면을 이용하여 비교적 넓은 대지를 구축하였다.
이 사찰은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 사찰이다. 사찰내의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남누(鎭南樓), 칠성각, 대방,
요사채 등이 있는데, 그중 대웅전이 가장 화려하게 지어진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장경사의 일주문이 단청을 하지않은 그대로 이네요
장경사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성벽으로 흘러내려 멋진 폭포를 만들고 있습니다
굽이치는 남한산성
발아래 산성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보입니다만 여전히 비는 거칠줄을 모르고......
성벽 밖에 보이는 바위가 송암정이 있었던 바위이다
송암정터는 성 밖의 동문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오르면 바위절벽과 그 사이에 말라 죽은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산성리 산 8-1번지에 행당되며 송암정 표지석은 성 안에 , 송암정의 바위와 고사목은 성 밖에 서 있다.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하산하여 이 곳을 지나는데 남자 수명과 기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때 술에 취한 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그 사내에게 심오한 불법을 설파하였다.
이때 그 무리 중 감명을 받은 기생 한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 내려 자결하였다.
이 바위에 서 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렸으므로 '대부송' 이라고 부르는 그 소나무이다. 송암정은 우리말의 '솔바위 정자'라는 뜻이다.
동문으로 가는 성벽에도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보수공사중인 동문입니다
동문은 보수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도 없습니다
동문 안내
첫 출발점이었던 남문까지는 1.7km남았다 ㅎㅎㅎ
차길옆 작은 소공원에 세워진 남한산성 입석
계속해서 비가 내리니 계곡물도 제법 많이 흐르네
남한산성안내도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11번째 암문이라고 합니다 (아래사진)
제 11암문
저 멀리 굽이치는 산성을 보노라면 선조들의 얼과 피와 땀 그리고 힘들었을 그때를 생각하게 만든다
복원중인 옹성
암문
성벽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연분홍 싸리꽃이 만발을 했어요
남장대의 누각이 있었던 자리엔 주춪돌만 뒹굴고 있다
복원된 옹성에서 인증샸을 찍었다
여기에도 복원공사중인 옹성이 있다
암문은 철문으로 차단해 놓았다
제7암문은 다른곳의 암문보다 규모가 컸다
성곽옆 숲길을 지나고
남한산성에는 이렇게 군데군데 쉼터가 있어 좋다
출발지였던 남문이 눈앞에 보인다
남문에 올라 감상에 젖어보고
서울에서의 마지막 산행을 마무리하기에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인 남한산성
남한산성을 뒤로 하고 서울에서의 3박4일 일정을 마무리하기위한 준비를 해야 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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