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명삼보(歸命三寶)란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보배에 대해 귀의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신앙입니다.
삼보란 불법승을 말합니다. 불이란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 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 승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비구, 비구니 스님을 말합니다.
불법승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고 해서 세 가지 보배라고 합니다.
불교신앙는 이 세가지 보배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귀의, 의지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1. 삼보(三寶) - 불법승(佛 法 僧)
① 붓다(佛)
붓다 또는 깨달은 분-어원적 의미는 "아는 사람" 또는 "깨친 사람"-이라는 명칭은 인도의 성자, 고타마라는 분에게 주어진,
존경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고타마는, 세상에 불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해탈의 법을 발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한 분이다.
고타마 붓다는 기원전 6세기, 카필라바투라는 곳에서 석가족을 다스리던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필라바투는 현재 네팔
국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싯다타였고, 종족의 성은 고타마(산스크리트어로는 가우타마)였다.
29세 때, 그는 호화로운 왕자로서의 삶과 왕족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하여, 일찍이 알고 있었던 괴로움의 세계, 이 고해(苦海)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집 없는 고행자가 되었다. 여러 종교의 스승들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그리고 결실 없는 고행을
하면서 보낸, 6년의 구도생활 끝에, 그는 마침내 가야(현재의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45년
동안, 지칠 줄 모르게 법을 설하고 가르침을 편 후, 세상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셨던, 어리석음[無知]
을 벗어버리신 그 분께서는, 마침내 80세를 일기로 쿠시나라에서 입멸(入滅)하신다.
붓다는 신(神)도 아니며 신의 예언자나 화신(化身)도 아니다. 오히려 그 분은 자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궁극적인 자유
[解脫]와 완전한 지혜를 얻어서 천신(天神)과 인간들 가운데에서 견줄 이 없는 스승[無上師]이 된, 최상의 인간이다. 그 분이
걸었고 보여준 그 길을,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실제로 따라감으로써, 인간들이 스스로 자기자신을 구원해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만 그 분은 "구원자"이다. 붓다가 얻은 지혜와 자비의 완전한 조화를 통해서, 그 분은 보편적이면서 영원한,
완성된 인간의 이상을 구현하셨다.
② 담마(法)
담마는 그 전체가, 붓다가 발견하고, 깨닫고, 선포한 해탈에의 가르침이다. 이 담마는 고대 인도어의 하나인 팔리어로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경(經) 율(律) 론(論), 삼장(三藏)의 형식으로 보존되어 있다.
율장이란, 사원의 질서에 대한 규범들을 내용으로 하는, 계율의 모음집이다.
경장이란, 여러 가지 법문, 대화, 게송,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성제(四聖諦)로 요약될 수 있는 교리를 다루고 있는,
설법의 모음집이다.
논장이란, 경장의 가르침을 아주 체계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인 형태로 정리한, 철학서의 모음집이다.
담마는 계시의 교설이 아니라, 실재(實在)에 대한 분명한 앎을 바탕으로 한,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담마는 인생의 근본적인
사실에 대해 다루고 있고, 마음의 정화(淨化)와 통찰의 지혜를 향한, 인간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획득되는 자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사성제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는 담마에서, 고상하지만 현실적인 윤리의 체계와 인생을 꿰뚫어 보는 분석력, 심오한
철학,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실제적인 방법 등을 얻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것을 갖춘, 종합적이며 완벽한,
해탈에 이르는 길에 대한 안내를 얻을 수 있다. 감성과 이성의 요구에 대답하면서, 그리고 무익하고 파괴적인 온갖 극단적
사고와 행위를 극복하도록 이끌어주는, 자유로운 중도(中道)를 제시하면서, 담마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메시지의 참된 가치를 이해하는데 충분히 성숙한 마음과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러한 호소력을 지닐 것이다.
법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덕목이 있으며, 세 번째 덕목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음"이다.
① 잘 설해져 있음(svaakkhaato),
② 지금 이곳에서 경험될 수 있음(sandi.t.thiko),
③ 시간을 지체하지 않음(akaaliko),
④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ehipassiko),
⑤ 열반으로 이끌어 줌(opanayiko),
⑥현명한 사람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것(paccatta.m veditabbo vi~n~nuuhi). >
③ 상가(僧)
상가의 원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모임, 또는 공동체이다. 불교에서의 상가의 의미는 비구 즉, 걸식하는 승려들의
승단(僧團)을 말한다. 이 상가는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치타공(벵갈) 등에서 그 원래의 형태대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불교의 상가는 자이나 승려들의 승단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행자의 집단이다. 붓다 당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사리풋타는 스승의 바로 뒤를 따르는 수제자로서, 담마에 대해서 가장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목갈라나는 신통력에 있어서 가장 뛰어났으며, 아난다는 헌신적으로 스승의 시중을 든 제자로서 항상 붓다를 모셨다. 마하카사파는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직후, 라자가하(王舍城)에서 열린 제 1차 결집을 이끈 제자이며,
아누룻다는 천안통(天眼通)을 지녔으며, 마음챙김[正念] 수행의 대가였다. 라훌라는 붓다의 아들이었다.
상가는 외적인 울타리를 제공해 주며, 해탈이라는 인생의 최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삶 전체를 바치려고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번거로움의 장애가 없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이 상가 역시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향상되어 종교적인 성숙에 이르고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던지, 보편적으로 시간을 넘어서서 중요하다.
2. 세 피난처[三歸依]
붓다, 담마, 상가는, 그 비할 수 없는 청정함 때문에 그리고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대상이기 때문에
"세 가지 보배[三寶]"라고 불린다. 불교도들이 삼보를 자신들의 삶과 사유의 안내자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공언하고 다시금
확언한다는 말을 통해서, 이 세 가지 보배는 불교도들의 "세 가지 피난처[三歸依]"가 된다.
다음의 팔리어로 된 삼귀의는 붓다 당시와 여전히 똑같은 형식으로 암송되고 있다.
붓담 사라남 갓차미 Buddha.m sara.na.m gacchaami
담맘 사라남 갓차미 Dhamma.m sara.na.m gacchaami
상감 사라남 갓차미 Sa"ngha.m sara.na.m gacchaami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歸依佛 兩足尊)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歸依法 離欲尊)
저는 승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歸依僧 衆中尊)
이 삼귀의를 세 번 암송하는 간단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불교도임을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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