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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매산의 억새
발길 가는대로

국보2호 를 만나러 간 돌풍

by 돌풍56 2014. 10. 23.

2014년 10월 12일

1년에 한 두번 가는 한양 나들이

모처럼 서울을 갈 일이 생겨 볼일을 보고 내친 김에 국보2호를 보기 위해 종로로 발길을 향한다

탑골공원

아니 어쩌면 파고다 공원이 더욱 가깝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초등하교 사회책에서 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오늘에야 직접 보게 되었다

 

탑공공원의 정문인 삼일문을 들어서니 벌써 해는기울고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탑공공원

사적 제354호. 탑공원·탑동공원이라고도 한다. 이전에는 파고다공원이라 했으나, 1992년부터 이곳의 옛 지명을 따 탑골공원이라 개칭했다.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공원이라 해야 옳다. 또한 공원의 개원연도도 1895년이나 1896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특히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민족해방운동의 발상지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공원 내에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원각사지10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국보 제2호)·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보물 제3호)·앙부일구(仰釜日晷)받침돌 등의 문화재와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동상, 한용운 기념비 등이 있다. 1980년대초에 공원을 막고 있던 파고다 아케이드를 철거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고 공원부지를 확장했으며, 서문·북문 등을 복원하고 공원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투시형 담장을 설치했다. 1987년부터 무료로 개방하여 많은 시민들에게 도심 속의 아늑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탑골공원 안내도

 

삼일문의 문양과 장석

 

원각사비

 

삼일문을 들어서니 우측에 원각사비가 있고

 

원각사비문은 돌풍의 눈과 실력으로는 읽을수도 없다 ㅎㅎㅎ

 

탑공공원 팔각정

황실공원으로 제실, 음악연주 장소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1913년부터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학생들과 시민이 이 앞에 모여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시위 행진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는 시민들이 울적해진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이곳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원각사 10층석탑 (국보2호)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원각사 10층석탑의 기단

 

 

 

 

 

팔각정과 10층석탑 전경

 

 

 

 

 

 

 

손병희선생 동상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호 : 의암(義菴)
별칭 :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활동분야 : 종교
출생지 : 충북 청주(淸州)
주요수상 :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919년 3월 1일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출발지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곳이다.

 

대한독립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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