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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아섬의 일출
발길 가는대로

태백산의 품에 안긴 영주 부석사 (상편)

by 돌풍56 2014. 10. 8.

2014년 10월 5일

집안 재종들과 함께 여행길에 나선 영주 부석사

그 동안 마음만 갖고 있었지만 관광버스로 떠나는 재종간의 여행은 그 무었보다도 즐거운 여행길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고향으로 간다

버스가 고향 밀양에서 출발하여 부산의 동래를 거쳐 다시 대구-대동간 고속도로를 탄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네

 

부산에서 탑승한 재종들과 합류하여 청도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휴일아침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여기저기가 식사중이다 ㅎㅎㅎ 

 

다시 장시간의 여행이 시작된다

 

밀양에서 탑승하여 5시간이 지나니 부석사 안내판이 보인다 

 

아직 철이 이른 은행잎이 조금씩 색갈이 변하고 있다 

 

밀양에서 출발한지 5시간 40분만에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인공폭포를 지나고

 

형님과 사촌큰누님

 

어딜가나 관광지입구에는 노점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부석사 안내판

 

 

 

매표소를 지난 오르는데도 은행잎이 반기는데 ~~~

 

어찌 여기는 일주문을 통과했는데도 노점상이 있다

 

탱자나무에는 노란 탱자가 파란 하늘에 담겨져 있고

 

 

 

눈앞에는 하늘높이 솟은 당간지주가 들어왔다

 

천왕문앞에선 재종들

 

 

 

천왕문을 들어서니 부석사 경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태백산의 품에 안긴 부석사는 아름답게만 보이고

 

좌우측으로는 3층석탑이 있다

 

 

 

 

 

날아갈듯 치솟은 범종각을 지나

 

 

 

안양루의 계단을 오른다

 

멀리 펼쳐지는 경치는 장관이다

 

안양루밑으로 통하는 계단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60년만에 보는 무량수전인데 ㅎㅎㅎ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무량수전 우측에 있는 3층석탑을 지나 조사당으로 간다

 

 

 

무량수전과 3층석탑

 

영주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조사당 벽화 (국보 제46호)
부석사에 전하는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이다. 일제 시대에 벽체에서 분리하여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현재는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상을 그린 것인데 이 절의 창사주인 의상대사를 기린 조사당에 그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를 외호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듯하다

 

 

 

조사당의 선비화

의상조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지팡이가 있었는데 조사가 열반하실 때 예언하기를"이 지팡이를 비와 이슬에 맞지 않는 곳에 꽂아라. 지팡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우리나라의 국운이 흥왕할 것이다"고 하매 문도들이 조사당 축대에 꽂았더니 과연 음력 4월 초8일께 버선 모양의 누런 장삼빛 꽃이 피었다.

  그 후로 국운이 흥하고 나라가 태평할 때는 늘 잎이 피고 꽃이 피었으나 한말(韓末)에서 일제 때는 잎은 피어도 꽃은 피지 않았던 것이 8.15해방과 함께 30여년만에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령(樹齡)은 1300여년이라 하나 높이는 불과 1m 30Cm정도로 이지방의 고로(古老)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장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다시 무량수전으로 내려와 촬영을 한다

배흘림기둥에서서 라는 소설속의 무량수전이 지금 눈앞에 있다

 

석등 (국보 제17호)
부석사 석등은 無量壽殿 중심 앞 中庭 중앙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무량수전

진입하기 위해 安養樓 계단을 오르면 제일 먼저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또한 석등 앞에는 석등의 부속물인 방형의 拜禮石이 현존한다. 이들 석등은 배례석이 있는 부석사는 義湘(625~702)이 文武王의 뜻을 받들어창건한 이래, 그 제자들에 의해 法燈이 계속되었다. 특히 신라 하대에는 神琳 이후 번성하여 건물의 중창은 물론 많은 인재가 배출되므로써 華嚴宗을 크게 일으키면서 석등과 같은 조형물이 조성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등과 무량수전

 

우리나라 전통의 미를 살린 무량수전은 보기만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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