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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매산의 억새
발길 가는대로

35년 만에 찾아간 통도사

by 돌풍56 2015. 3. 19.

2015년 3월 18일

 

일주일 전인 3월 11일 날

마눌님의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울 집을 방문한다기에 부득이 소풍을 떠나기로 했다 ㅎㅎㅎ

우선 가는 길에 양산통도사를 들렀다가 시간여유가 있으면 원동의 순매원도 들러볼 생각이었다

오전 10시경에 도착한 통도사

 

1980년 8월

전역후 5개월만에 후배님들을 만나러 다시 찾아간 부대

연천의 최전방 부대를 방문하여 당시의 여러 전우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다음 날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타고 동해선을 따라 양산통도사까지 온 이후 처음이니까 벌써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양산 통도사~~~~~~~~~~~~~

 

통도사의 입구인 영축산문

통도사주차장에 도착하여 산문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문에서 입장료를 내고  통도사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절 바로앞에도 대형주차장이 있지만 주차장에서 절까지 20여분거리를 걸어가기로한 것은 통도사의 자랑거리인 절 입구까지 이어지는

1.1Km의 무풍한솔길을 걸어보기 위해서 이다 

 

주차장에 세워진 통도사 안내도

 

무풍한솔길의 시작점

 

여기서 우측길은 도보용 무풍한솔길이며 좌측길은 자동차전용 도로이다

 

우리나라의 8대총림

우리나라에는 총림이 5군데 있는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를 8대 총림이라고 한다. 통도사는 1972년 총림으로 승격되었으며,

총림의 수장은 방장(方丈)이라고 한다. 모든 승려들은 행자교육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으면 강원이나 선원, 율원에 입방 4년 간의 교육을 수료해야 비구계를 받을 수 있다.

 

아름드리 노송이 우거진 길

 

상쾌한 솔향과 어우러진 봄의 향기도 코끝을 자극하는것 같다

 

무언가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글에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렇게 좋은 길을 아니보고는 통도사를 논할수 없다

 

                         영축총림

                         총림(叢林)의 뜻은 범어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바나(貧陀婆那)라 음역하며 단림(壇林)이라고도 번하는데,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다.

 

성보박물관

통도사성보박물관은 한국최초의 불교전문박물관으로 도난이나 훼손 등의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는 사찰의 전래 문화재들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존 전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하여 불법의 홍보 및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박물관입니다

 

통도사를 끼고 흐르는 맑은 물이 인상적이다 

 

주차장과 연결된 구름다리에서 본 통도사 전경

 

일주문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의 초창은 고려 충렬왕 31년(1305)이며 현 건물은 영조 46년(1770)

두섬대사(斗暹大師)가 중건한 것이다.

일주문 현판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란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필적으로 유명하다. 주련(柱聯)에는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가 있다

 

불심

 

천왕문에서 전경

좌측에는 범종각이 있고 우측에는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극락보전과 종무소사이에 핀 홍매화

 

극락보전

극락전의 초창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 성곡대사(성곡대사)에 의하였고, 현재의 극락전은 건물 해제 수리시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순조1년(1801)에 중건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법당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의 교주이신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로 관음(觀音), 세지(勢至)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종무소옆의 홍매화

 

영산전과 삼층석탑

영산전은 하노전(下爐殿)의 중심 건물이다. 남향한 영산전의 전방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동서에 놓여 있고, 그 중앙 지점에는 신라 말기의 3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현 위치에서 동북쪽 약 1.5m 지점에 경사진 채 있었으나 최근에 현 장소로 이동하여 복원되었다

 

불이문

이 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경내의 마지막 문으로 일명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즉 동구(洞口)밖의 산문(山門)과 일주문, 천왕문(天王門)을 거쳐 들어온 마지막 문이다. 이 문은 1305년(충렬왕 31) 처음 지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세부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의 것으로 생각된다.

 

불이문에서 본 대웅전과 관음전

 

관음전과 석등

관음전은 용화전 앞에 위치한다. 곧 중로전의 중심법당인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의 세 법당이 남북으로 나란히 놓인 가운데 제일 남쪽에 위치하는 법당이다. 관음전은 영조 원년(1725)에 용암대사(龍岩大師)에 의하여 초창되었고, 그 이후의 중수 사실은 알지 못하며 근래에 기와를 개수(改修)한 법당이다.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은 상로전의 주건물(主建物)이다. 대웅전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되어 모두 15칸 건물이며, 특이한 것은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형이라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봉발탑 (보물 제471호)

봉발탑은 용화전 앞에 서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용화전

용화전은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1369년(공민왕 18)에 초창되었으나 당시 창건주는 알 수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1725년(영조 元年)에 청성대사(淸性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좌측의 금강계단을 향하여 기도하는 부부

 

구룡지

 구룡지는 자장스님이 구룡소(九龍沼)에 사는 용들을 승천시키고 못을 메워 절을 창건했다고 하는 유적이다.

금강계단 옆에는 자기마한 상징적인 못을 두고 있는데, 그것이 구룡지(九龍池)이다. 불과 작은 크기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 영험함이 있다.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금강계단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석가모니 당시 누지보살(樓至菩薩)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석가모니가 허락하여 기원정사의 동남쪽에 단(壇)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응진전

응진전은 대웅전 서남쪽 동향한 불전으로 1677년(숙종 3)에 지섬대사(智暹大師)가 창건하였다 전한다. 현존의 건물은 원래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식은 정면 3칸, 특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집으로 비교적 간결하지만 지대석(地帶石), 면석(面石), 갑석(甲石)을 갖춘 고식의 기단 위에 동향(東向)하여 있다

 

세존비각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

 

 

대웅전과 관음전 전경

 

영각

이 건물은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영정 85폭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팔작집이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지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영자각(影子閣)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각의 홍매화

가장 빨리 개화하여 진사님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홍매화

그러나 돌풍이 방문했을때는 지난 밤의 꽃샘추위로 꽃이 지기도 전에 얼어버렸다 ㅠㅠㅠㅠㅠ 

 

추위에 얼었더라도 아름다운 홍매화

 

매화를 담고있는 스님들 

 

얼어붙은 홍매화지만 그래도 아름답기만 하다

 

한쪽옆에는 산수유가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종무소옆 매화와 석등이 어울린다 

 

영각의 홍매화와 달리 이제 꽃망울을 터트리는 종무소의 홍매화

 

종무소옆 전경

 

영각의 홍매화와 산수유

 

통도사의 인증샷

 

범종각

범종각은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서 바로 남쪽에 위치한다. 이 건물은 2층 누각형식의 건물이다. 건물의 초창은 숙종 12년(1686) 수오대사(守梧大師)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건물이 아닌 중수된 건물이다

 

 

부도원

통도사 경내 아래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개울을 건너면 남향한 터에 자리한 부도원을 만난다. 이곳은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사리탑과 탑비를 봉안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통도사 주변과 산내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1993년 가람을 정비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여 부도원(浮屠院)으로 조성한 것이다.

 

석당간

통도사 부도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석당간은 기단부 전체가 후대에 와서 중수된 것이다.
지주석(支柱石)은 당간(幢竿)과 함께 조립하였으나, 지상에 노출된 부위만 가공된 상태이고 표토 부위에서부터 지하 2m 가량 묻힌 부분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다.

 

산문

부도원을 지나서 바로 나오는 문이다. 월하스님께서 쓰신“영축총림”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총림의 사격과 사찰의 시작을 표방한 총림문(叢林門)이라 하겠다.

 

35년만의 양산 통도사

가까이 있으면서도 찾지않았던 통도사를 다시보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는 정말 자주  드나들며 많은 생각과 정신적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싶음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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