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7일
오늘은 가족여행을 가는 날이다
올해는 돌풍의 회갑이 되는 해이기에 아들 딸들이 미리 계획을 세워놓아 손 꼽아 기다린 날인데
일주일 전 부터 주말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예고를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비가 온다 ㅎㅎㅎ
참 일기예보가 너무 정확하니 어리벙벙하다
그 좋던 가을날씨는 어디를 가고 하필이면 오늘같은 날 비가오냐
그래도 돌풍부부는 몇일 전 부터 아들 딸에게 줄 온갖 선물을 준비해 두고 행여 빠질세라 차곡차곡 챙겨두고는 차에 싣는다
오전 9시30분에 출발하여 전주한옥마을에서 아들부부와 만나기로 하고 딸은 오후 5시에 전주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어찌보면 비 오는 날의 분위기가 더 운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삼고 전주로 향한다
창원대로 끝에서 신호대기중인데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우천중인 남헤고속도로
진안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도 취할겸 들렸다
비 오는 날의 마이산도 가을낙엽에 흠뻑 젖어보인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찰칵하고 ㅎㅎㅎ
전주한옥마을 공영주차장에 도착을 했는데 만차라고 경찰이 전주교대로 안내를 한다
교대에 주차를 하고 한옥마을로 들어가는데 무슨 이런 날에 한옥마을에 만차라니 이해가 되질 않는다 ㅎㅎㅎ
교대주차장에서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 한옥마을로 가는데 ㅎㅎㅎ
무슨 사람들이 한옥마을에 다모여 있다 ㅎㅎㅎㅎㅎ
7~8년 전에도 한 번 왔었는데 그때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점심은 유명한 떡갈비로 했다
이 번 여행은 전라도의 맛집투어도 겸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운전을 하고 비오는 날이라 방에 앉으니 마음이 편안해져 마눌님과 샐카도 찍고 ㅎㅎㅎ
맛있는 음식에 인증샷도 남겼다
이것도 유명세를 탄 지팡이아이스크림
문어꼬치집에는 불이 났고 ~~~~~~~~
점심식사후 디져트로 아이스크림집으로 ~~~~
가는 곳마다 신기하고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아이스크림도 특이한 만큼 맛도 일품이다
거리에는 젋은이들로 넘쳐난다
풍년제과앞에도 빵을 사기위한 긴 줄이 형성되어 장사진이다
오늘 하룻밤을 보낼 한옥집인 일락당이다
상냥하게 맞아주시는 주인 부부의 안내로 들어선 집이다
넓은거실과 주인어르신이 직접 벽난로 까지 피워놓아 온기가 느껴진다
아담하고 정갈한 한식이불이 개어져 있는 2개의 방과 거실이다
골목길에서 촬영한 곳감이 걸려있는 집이 일락당이다
여장을 풀고 거리관광에 나선다
전통문양의 부채에 시선이 가지만 가을이라 인기가 없다 ㅎㅎㅎ
그렇지만 우리 것은 역시 좋다
입구의 엘리베이트를 타고 한옥마을전망대로 올라간다
전망대에서 보는 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의 풍남동과 교동 일원에 있는 면적 296,330m2의 한옥마을이다. 현재 995가구, 2,202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총 708동의 건물 중에 한옥이 543개이고 비한옥이 165개이다.[3] 전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추측되고 있다. 원래 자연부락 형태의 마을들이 산자락에 형성되었었으나 665년 신라 문무왕 때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면서 주거지가 평지로 이동했다. 전주사람들의 본격적인 평지에서의 생활은 전주읍성(전주성)의 축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전주읍성을 중심으로 고려시대에는 한벽당 오목대 간납대 등이 지어졌고, 그 주위로 옥류동, 자만동과 같은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 마을들이 현재 한옥마을의 모태가 되었다.[4] 전주한옥마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을사조약(1905년) 이후이다. 원래 일본인들은 전주읍성의 서문 밖(지금의 다가동)에 거주하였다. 주로 상인이나 천민들이 성 밖에 거주하기 때문에 성 안과 밖은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11년 말 전주읍성의 남문을 제외하고는 성곽이 모두 철거되면서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늘어나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으로 뭉친 한국인(특히 양반)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를 가진 한옥들이 즐비한 지금의 전주한옥마을이다.[5]
셀카도 찍고
전주 전통 술 박물관
한옥과 감홍시
청사초롱을 밝힌 한옥홈스테이인 일락당 사랑채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진지하다
인터넷문화로 인기가 있는 음식점은 이렇게 번잡하기만 하다
딸이 도착한다는 전동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꽃길을 조성한 경기전
경기전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젋은이들이 촬영에 여념이 없다
경기전
사적 제339호. 지정면적 4만 9,527.4㎡. 1410년(태종 10)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계림·평양 등 세 곳에 창건하여 부왕인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셨다.
1442년(세종 24)에는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이라 불렀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4년(광해군 6)에 중건하였다
경기전안내도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1981년 9월 25일 지정)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恨 맺힌 사형터 *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다.
경기전과 은행나무
화려하게 조명을 밝힌 음식점
전통공예품전시장에 들러 감상도 하고
전주특산물 모주
비가 오는날인데도 한복대여점은 성업중이었다
오늘 최고의 저녁식사가 차려질 음식점인 궁
6명의 저녁식사를 예약한 경희궁
다음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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